박찬호 필라델피아 필리스 투수가 LA다저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동안 2실점을 하며 호투를 했다. 2실점으로 막아 2009년 MLB 첫 승리투수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도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박찬호 투수의 위기상황에서의 투구가 돋보였다.

투수가 위기상황에 닥치면 보통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실점위기상황에 닥쳐서 더 잘 던져야겠다는 맘을 먹는 것은 어느 투수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투수는 없던 힘도 뽑아내서 구속이 더 빨라진 직구와 각이 날카로운 변화구를 구사해서 위기를 모면하는 투수가 있고,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공에 힘은 실리지만 공을 제대로 제구하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는 투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위기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해 던지는 투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만일 위기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투수가 많다면 야구경기를 관전하는 재미는 반감될 것이고 사람인 이상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박찬호 투수의 경우는 모두가 알다시피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위기에 닥치면 지나치게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 공이 의도하는 지점에 꽂히질 못했다. 그러니 주자를 두고 큰 것 한방을 맞아 그대로 무너지거나 볼넷을 남발해 실점을 하늘에, 운에 맞기는 경기가 많았었다. 위기를 스스로 헤쳐나간다기 보다는 있는 힘껏 던져놓고 운이 좋아 공이 의도하는대로 들어가면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그 반대면 그냥 무너지는 경기는 박찬호 선발등판경기를 관전하는 아슬아슬한 재미였다. 주자만 나가면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며 위기를 벗어나길 거듭하며 승리를 따내 재미를 더해주는 면도 많지만 풀리지 않으면 답답하게 지레 무너지는 경기도 자주 있어왔다.

화면을 캡쳐하면 좋을테지만, 박찬호 투수가 LA다저스전에서 보여준 각양각색의 투수폼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저번 6이닝 무실점 경기에서와 달리, 아니 초반경기를 보지않았으니 저번과 같았을지도,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간혹 보여준 여유로운 투구폼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글러브에서 공을 빼서 잠시 멈추는 공작은 박찬호투수에게서 여태 볼 수 없던 장면이었다. 잠시 용수철을 장전한다고 할까, 힘을 모으는 장면은 여유로움으로 보였다.

또, 키킹하는 왼발이 몸 쪽으로 가깝게 또는 멀리 올렸다 내리며, 잠시 오른손에 공을 쥐고 멈추는 장면을 보면서 예전에 공들였던 기계적인 투구폼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에는 공을 던지는데 밸런스가 어쩌고 저쩌고, 보폭이 짧으니 기니, 공을 길게 가져가니 먼저 놓으니 하는 많은 이유를 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리, 발목, 허리, 어깨, 팔꿈치가 톱니바퀴 돌아가듯 맞물려야 제대로된, 위력있는 공이 뿜어져 나오는데 어느 한 부위에 이상이 있으면 전체가 망가진다는 논리였다. 이는 지금도 많은 투수들이 공을 못 던질 때 변명거리로 나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LA다저스전에서 보여준 박찬호투수는 세세한 몸부위 움직임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키킹각도가 조금 틀어져도, 투구시 잠시 멈춰도, 내리는 왼발을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여도 투구에 지장없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미세한 차이로 인해 공의 빠르기나 각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또 하나의 타자를 상대하는 투수의 무기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체인지업이란 것이 투구폼을 똑같이 하면서 날라가는 야구공에 속도와 꺽이는 각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면 의도하지 않았지만 미세하게 달라지는 투구폼으로 인해 공에 변화가 더해진다면 타자입장에서도 상대하기 어려운 투수가 되는 것일 게다. 물론 이에 전제되어야 하는 포인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원하는 지점에 자신있게 공을 뿌려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박찬호 투수가 이제 아프지않고 몸에 이상이 없자 공을 던짐에 있어 다른 인체부위를 신경쓰지 않는 경지에 눈을 뜨고 있는 과정에 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에만 집중하며 힘을 모으면 몸이 따라가 주는, 투수가 힘을 빼고 던진다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경기였다는 것이다. 전성기가 벌써 왔어야 했는데 부상당한 텍사스 시절로 인해 많은 시간을 헛되어 버린 감이 적지 않다.

물론 박찬호 투수가 저번 경기에 비해서 나아진 면은 별로 없다. 공에 좀 더 힘을 실어서 던질 것을 기대했는데 구속도 더 빠르지 않았고 제구력도 좋지 못했다. 하지만 저번 경기보다 더 나아보이는 면은 여유가 보였다는 점에서다. 갑자기 찾아온 변화에, 덕분에 박찬호 투수 선발등판경기를 시청하면서 맘편하게 관전할 수 있었다. 다음 경기에서는 힘을 더 실어내는 장면을 보고 싶다.

이제 전성기를 맞이하는 박찬호를 보게 된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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