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부품 가격이 연일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이유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부품제조회사들이 수요가 부족해 팔리지도 않는데 무작정 메모리 부품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세트기업들은 여러 반도체부품회사가 만들어내는 부품을 골라서 조달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규격화된 메모리 부품이어서 그런 것이다.
규격화된 메모리 부품사업에서의 경쟁력은 역시 원가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난다. 반도체 사업의 경우는 후발업체라고 하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매력이 있는 사업이다. 웨이퍼 한 장에서 남들은 500개의 굿 다이(die)를 만들어 낼 때 700개를 만들어내면 500개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개당 1달러로 팔면 순익분기점이지만 700개를 찍어내는 회사입장에서는 0.72달러가 원가이니 개당 28센트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선두기업이 회로 미세선폭 공정기술을 1년이상 앞서 나간 상태에서도 후발업체 입장에서는 시간당 웨이퍼 가공 회전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대응이 가능했었다. 즉, 다른 반도체 부품회사가 같은 반도체 팹에서 월 웨이퍼 가공량이 3만장이라면 반도체공정 간 시간 효율성을 높여 4만장을 가공시키면 미세선폭 경쟁에서 뒤처져 웨이퍼 한 장 당 다이를 만들어내는 수량에서는 뒤처지지만 하나의 반도체 팹에서의 다이 생산량은 얼추 따라가게 되어 원가경쟁력에서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발 반도체 메모리 부품기업들은 꿈을 꿀 수 있었다. 300mm웨이퍼 팹을 보유하지 않아도, 시장점유율이 좀 적어도, 미세공정기술이 좀 떨어져도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석은 찾다 보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선발업체가 만들어내는 메모리는 후발업체들이 못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었다. 규격이 같기에 언제라도 가격경쟁력만 갖추면 판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선발업체가 그렇게 멀리 보이지도 않았다.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해 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메모리 시황은 주기적으로 순환을 해 불황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호황기로 돌입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불황기 때 까먹었던 손실을 복구하고도 남을 이익을 안겨주었기에 어려운 시기가 와도 버티기만 잘 하면 되었다.
그런데, 선발업체와 후발업체가 공존해왔던 메모리사업에서 격변기가 찾아왔다. 감히 후발업체가 선발업체에 보란듯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그것은 선발업체의 고유한 자존심이었던 미세공정 기술에서의 역전이었다. 68나노인데 66나노라니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그래서 8f2를 6f2로 바꾸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했다. 참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었다. 그랬더니만 이 후발업체는 텅스텐 기술을 도입한다고 맞대응을 해왔다. 이 무렵 선발업체 내부분위기는 엉망이 돼 버렸다.
선발업체로서는 시장의 왕좌자리를 위협하는 후발업체를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법은 물량폭탄이었다. 도전하는 업체와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업체와의 한 판 승부가 벌어졌다. 물론 선발은 위기의식이 팽배했고 후발은 우월의식이 사내에 범람했다. 결과는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세계 최고라던 66나노가 1년 이상 아니 한 번도 골든수율은 커녕 양산수율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회로 마진이 적기에 이를 타개하기도 쉽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다음 세대 회로선폭 줄이기로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곤경에 처했다. 원래는 66나노를 도입하고 적어도 리비전 5 정도면 수율이 잡혀야 했다. 그런데, 잡히지 않으니 미세공정 개발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66나노를 마무리하고 다음 54나노를 준비하거나 더 앞선 미세공정기술 개발로 넘어가야 할 개발인력들이 66나노 수율잡기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66나노 양산수율이 잡히지 않자 54나노로 빠르게 넘어갈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 쉽지 66나노를 도입한지 6개월이 되지 않아 54나노로 넘어간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자처하는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66나노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54나노로 넘어간다고 해도 똑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66나노가 아니라 68나노 보다 좀 뒤처진 70나노로 미세공정기술을 도입했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 분기 동안의 승리 도취감에 빠져 1년을 허송세월 (虛送歲月)했다. 아니 허송세월이 아니라 그동안 전임사장기에 벌어논 투자여력을 다 까먹어 버렸다. 그리고도 54나노의 고집은 버리지 않았다. 선발이 56나노인데 굳이 54나노로 가려는 것이다. 물론 이 결정은 이제야 나온 의사결정이 아닐 게다. 그것은 사장 취임시 의욕적으로 계획된 개발일정에 의한 것이다. 66나노로 밀고 나갈 시점에 나온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54나노 D램은 순항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좀 무리한 계획임은 66나노 실패를 통해 알 수 있기에 그렇다.
D램만 가지고 매달리면 무슨 해결책이 나올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경영진 어깨에 지워진 책임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실적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방법이었다. 열심히 메모리 부품을 찍어냈는데 수요가 그만큼 형성되지 못했다고 변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팹의 용도변경에 나서기 시작했다. D램이나 플래시를 찍어봐야 시장가격이 생산원가에 미치지 못하니 메모리를 양산할 바에야 사업다각화라는 생색도 낼 겸 해서 파운드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이 어디 쉬운 사업인가? 그 얼마 없던 파운드리사업 기반 마저도 매그나칩이 다 가져가 버렸다.
파운드리 사업을 하려면 일단 고객사가 원하는 설계 툴을 비롯해 각종 반도체IP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파운드리 전문회사가 아닌 한 TSMC나 UMC가 보유하고 있는 IP를 모두 구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파운드리 사업을 한다고 설레발치는 것은 사실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버리자니 들인 돈이 아까운 200mm팹을 재활용하려는 방편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불특정 다수 IT기업들에게 파운드리 팹을 개방할 수도 없었다. 개방했다가는 밀어닥칠 추가 일들이 감당이 되지않을 것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파운드리 사업은 해야겠고 반도체IP도 준비하지 못했으니 꽁수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파운드리를 의뢰할 팹리스업체에게 파운드리를 호조건으로 해준다고 하며 양산물량을 얻어온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남 좋은 일만 시킬 것이란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팹리스업체에 지분투자까지 감행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는 마치 팹리스 지주회사로 업종을 다각화한 것으로 일이 눈덩이 굴리듯 엉뚱한 방향으로 커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포투님 글을 보면서 큰 그림에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생각해보니, 작년에 선발이 발칵 뒤집혔던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 또 후발에 갑자기 생긴 수율 문제 등등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들중에 잘 이해되지 않던 부분들이 풀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