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팹리스업체들이 대만 파운드리업체로의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국내 매그나칩, 동부하이텍 등 파운드리 사업을 영위하는 파운드리 반도체회사가 있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메모리 불황에 따른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비메모리 사업을 확대한다고 했는데 왜 국내 팹리스업체들은 이들 팹보유 회사에게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일단 하이닉스의 8인치 팹을 가지고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쉽게 하기 위해서 8인치 팹의 풀캐파가 웨이퍼 10만장이라고 가정한다. 또 한 장의 8인치 웨이퍼에서 생산되는 IC의 수량을 평균 500개라고 가정하고 글을 이어 나간다.

국내 팹리스 반도체설계업체들이 파운드리 의뢰를 하면서 월 IC 필요물량이 5만개라고 한다면 웨이퍼 사용량은 100장이면 된다. 풀캐파가 월10만장인 8인치 팹에서 100장 만이 소화될 뿐이다. 그렇다면 캐파 월 10만장을 소화하려면 월 IC주문량이 5만개인 1,000개의 업체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1,000개의 업체가 연중(年中) 항상 파운드리 주문의뢰하는 것은 아니어서 이의 3배수 정도의 팹리스업체 저변이 있어야 파운드리 사업이 안정적이랄 수 있다. 그런데, IC가 월 5만개가 팔려나가는 IT품목이 많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즘 디지털기기들 중 MP3나 PMP, 내비게이션이 신규 출시되면 월 5만개를 팔아치울 수 있는 회사는 업계 1, 2위업체에 국한될 뿐이다. 국내에서 5만개 주문을 낼 수 있는 1,000개의 IT업체를 찾기는 요원한 일이다. 또, 공정상 새로운 IC로 교체생산하기 위해 셋업해야 하는 시간을 줄여야하는 것까지 고려하면 일정이 쉼없이 돌아가야 한다. 즉, 5만개의 생산이 끝나면, 100개의 웨이퍼가 투입되고 나면 곧바로 다음 IC를 생산하기 위한 세팅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를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포토마스크(photomask)는 물론이고 다른 IC 생산을 위해 장비세팅이 쉴 틈없이 이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팹에서의 움직임이 이렇다면 주문 IT업체들에 기술지원하는 부서에서는 각 팹리스회사의 반도체설계 정도에 맞춰 FPGA상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만을 확보했다면 이를 전용 반도체 회로 제너레이션, 시뮬레이션 툴에서 새로운 검증를 거쳐 파운드리 팹 공정용 회로를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일을 도맡아 지원해 내야 한다. 업체에서 원하는 아웃 풋 데이터가 팹을 통해 나온 IC가 제대로 똑같은 타이밍을 가진 데이터가 출력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파운드리 업체의 몫이다. 이는 파운드리 업체에 일정 파운드리 의뢰업체 수에 일정 기술지원 담당연구원이 배치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수적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월 5개업체를 한 직원이 담당한다고 보면 무척 빠듯한 업무라고 할 수 있고, 1,000개의 업체라면 기술지원만으로 200명의 연구원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200명의 기술지원 연구원은 금방 확보될 수 있는 일일까를 생각해 보면 더 아득한 지경이다.

파운드리 사업을 함에 있어 회사가 갖추어야 할 일들은 이 이외에도 부지기수로 많은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파운드리 사업으로 100원이라도 돈을 벌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10만장 캐파 8인치 웨이퍼 팹에 담당직원은 기술지원 200명, 영업50명(직원당 20업체) 정도는 신규영입돼야 한다. 그리고, 돈이 투자되더라도 꾸준히 3년 정도는 계속해서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이는 동부하이텍이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 아직까지 고전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그럼 메모리업체들이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할 적절한 시점이 나온다. 파운드리 사업이 메모리 시황이 좋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사업인가를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니올시다가 되겠다. 기본적으로 3년 간은 꾸준한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고 벌여야 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메모리 시황이 안좋아 회사 전체적으로 영업적자가 쌓이는 시점에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미친 짓이다. 당연히 파운드리 사업은 메모리 가격이 좋아 영업이익이 크게 생기는 호황기에 해야 하는 사업인 것이다. 그렇지만 메모리 호황시절에는 돈을 벌어다 주는 메모리 팹을 앞으로 수 년간 돈을 까먹게 될 파운드리 전용팹으로 돌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사업 육성에 점수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얘기가 왔다 갔다 하지만, 파운드리 사업에 있어 월 5만개 IC가 아니라 더 큰 물량이 나오는 DDI, CIS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제일 먼저 매달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한 개의 품목을 가지고 모델 수를 바꾸가며 많은 웨이퍼 캐파를 채울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1,000개의 업체를 상대해서 10만장의 캐파를 채워 돈을 벌려면 어느 세월에라는 탄식이 나올 만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중소 팹리스 업체 혹은 월 주문량이 50만장 아래인 업체들은 국내 양사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적어도 100만장 쯤 되어야 떳떳한 계약을 할 수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 이는 전문 파운드리 업체인 매그나칩과 동부하이텍도 사정은 유사하다. 이들 회사도 가만히 보면 순수 파운드리 업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파운드리 영업으로는 돈이 되기도 쉽지 않을 분 더러 사업자체를 영위하기가 어렵기에 월 캐파의 상당부분을 채워줄 독자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국내에서 주문을 받아주는 업체가 없으니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와 UMC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파운드리 물량에 있어 대규모 물량이 나오는 품목을 잠시 언급했는데 역시 가장 큰 수요는 LCD패널에 들어가는 DDI와 삼성전자가 두각을 보이고 있는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된다. 삼성전자는 자체생산, 판매하는 휴대폰을 포함한 모바일 기기에 채용되는 시스템반도체 IC를 독자적으로 개발 양산해 제품에 적용 경쟁력을 높여가는데 반해 LG전자의 전략은 특이해 보이는 구석도 있다. 아마 LG전자가 만들어내는 모바일 기기에서 핵심기술 보호차원에서라도 시스템반도체 칩을 개발해 조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대부분의 물량을 국내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쪽으로 돌린다면 어떨까 하지만 논외로 한다. 도무지 말이 통해야지 갑론을박(甲論乙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아예 꽉 막혔으니 도리가 없다. 다시 언급하지만 LG전자 입장에서 10만장 캐파의 8인치 반도체 팹 하나 정도는 외부판매를 전혀하지 않고도 자체적으로 소화가능하다. 역시 하이닉스 인수에는 LG전자 만한 기업이 없기에, 스스로 관심없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 다시 한 번 재고(再考)해야 할 문제는 틀림없다고 하겠다.

반도체 업계 쪽에서 보지 말고 눈을 정부차원으로 돌려보면 10만장의 8인치 반도체 팹이 완전히 국내 중소규모 팹리스업체들의 주문물량으로 풀캐파를 채울 수 있다면 시스템반도체 설계기반을 갖춘 1,000개의 IT업체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월 5만대 정도의 모바일 기기를 만들어 소화해내는 IT업체들의 수가 1,000개라면 지금 두 손가락으로 재고도 남는 미래 독자생존 가능한 팹리스 업체수와 비교해 보면 괄목상대(刮目相對)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업계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력이 딸리는 팹리스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자금지원 방향을 바꾼다면 실효를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또한, 국내 남아도는 8인치 팹을 정부 산하 연구원이 인수해 파운드리 연구팹으로 중소 팹리스업체를 지원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이닉스에서 보면 돈을 못 만들어내는 애물단지 8인치 반도체 팹이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활용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에 그렇다.

어쨋든 국내 얼마 남아있지 않은 팹리스 반도체 설계기업의 대만으로 옮기는 발길을 다시 국내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사실 원거리 주행중에 나눈 대화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거듭 언급하지만 포투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는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가 있는 글도 있고, 다시 한 번 정리차원에서 글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글이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1. 헬보이 2008/11/25 17:36  address  reply

    님 글 잘 읽었습니다. 하이닉스는 이천 M7 A,B 200mm 팹을 철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내부 케이블 및 배관을 서서히 철거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내부적으로도 내년 상반기 중으로
    장비를 매각을 계획중인데...여의치 않는것 같습니다.
    근데...포투님..삼성전자는 200mm 유휴팹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요?
    팹안의 공조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것으로 알고 있지마요...

    • 포투 2008/11/26 08:43  address  reply   modify / delete

      삼성전자는 200mm팹을 매각하지 않고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스템메모리로의 생산전용과 더불어 200mm팹의 메모리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세공정전환도 시도한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역시 자체수요가 있기에 생산할 디바이스를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보입니다. 그렇기에 메모리 생산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200mm팹을 이용해 오히려 비메모리 사업강화의 기회로 삼고있다는 생각입니다.

  2. 텔레칩스주주 2008/11/25 18:56  address  reply

    아무래도 좀 더 아시지 않을까 싶어 한 번 질문드려봅니다.

    혹시 아시는지... KIKO 얻어맞지 않은 것 부터 시작해서 빛도 없고 포트폴리오도 비교적 다양한 편인 것 같은데, 요새야 전체적으로 안 좋으니 그렇다고 하겠지만 그럼 그 이전 4년은 뭐야! 하고 외치게 만드는 웬수같은 회사인데. 뭐 혹시 뭐가 문제있는데인지 들어보신 적은 있으신가 해서 한 번 질문드려봅니다.

    • 포투 2008/11/26 08:49  address  reply   modify / delete

      텔레칩스라는 회사사정에 대한 것은 잘 모릅니다.

      단지 팹리스 회사는 하나의 디바이스 개발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개발비용이 상당합니다. 그렇기에 비상시를 대비해 현금을 많이 쌓아놓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발비가 많을 수 밖에 없는 회사의 특성상 매출이 줄어들면 영업이익이 빠르게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르게는 업황이 좋아지면 빠르게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특성도 있습니다.

      M/S가 확고하다면 경기가 좋아지면 수혜를 볼 수 있습니다. 경쟁기업들은 지금 더 움추러들었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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