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투수가 3,000 이닝 돌파한 날 한화의 선발투수는 정민철 투수였다. 과거의 구속으로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작년 겨울부터 내딛는 보폭을 포수쪽으로 더 앞으로 끌고가는 연습에 치중하고 있다고 2009년에는 달라지겠단 뉴스가 많았다. 오랜만에 정민철 투수의 호쾌한 투구장면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많았다.
야구경기를 TV로 시청하면서 제일 좋은 것은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더라도 팽팽한 승부를 유지해 긴장감이 경기내내 남는 경기이고, 세 번째는 형편없은 점수차이로 지더라도 신인선수의 활약이나, 재활을 거친 선수의 부활을 보거나, 어제 경기처럼 송진우 선수같은 노장선수들의 기록경신을 지켜보는 것이다.
만일 어제 송진우 선수의 3,000 이닝 돌파 기록 달성기록이 없었다면 한화와 두산의 야구경기를 보는 것은 시간을 내는 것 조차 아까운 경기였다. 물론 두산 팬 입장에서는 야구경기를 시청하면서 즐거웠을 것이다. 한화에게 지기를 바라는 팀이지만, 두산은 김선우 투수의 호투와 타자 강현수의 배트 돌리는 기술이 인상적이었다.
정민철 투수가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하며 겨우 겨우 버티는 스타일의 야구를 한 지도 꽤 됐다. 정면승부 보다는 타자를 상대하면서 살살 꼬시고, 도망가는 피칭을 일관하면서도 재작년에는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그런 도망가는 스타일이 작년에는 먹히지 않았고, 이에 대한 돌파구로 작년 겨울에 변신을 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변신의 핵심은 역시 직구의 구속늘리기였다. 구속을 늘리려면 빠른 팔회전과 허리회전, 넓은 보폭 내딛기가 필수적이다. 물론 보폭을 넓히지 않고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도 간혹 보이지만 그들 투수들은 롱런하지 못한다. 투구시 어깨, 팔꿈치, 손목, 허리 등의 특정부위에 과부하를 걸리기에 부상을 당하기가 십상인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바톨로 콜론 투수가 대표적인 투수로 기억된다.
어제 경기에서 정민철 선수가 겨우내 변신을 하려 노력했던 공은 볼 수 없었다. 빠른 공을 던지고, 또 경기내내 구속을 계속 유지하려면 투구폼이 역동적이어야 하는데 주로 던지는 공은 비실거리는 공이 대부분이었다. 느리게 날아가는 커브를 던지기 위해서는 투수의 동작도 느릿느릿해야 한다. 그래야 공이 천천히 날라간다. 빠른 투구폼으로 느리게 날아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변화구는 체인지업이 대표적이다. 빠른 공을 주력무기로 삼는 투수들이 체인지업을 같이 던지는 이유는 같은 투구폼에서 직구와 변화구(체인지업)를 던지기 위함이다. 물론 가끔가다 커브나 슬라이더도 던지지만 이는 투구시 폼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직구와 커브를 같은 폼, 같은 스윙으로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있다면 아마 30승도 거끈할 것이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민철 투수의 어제경기를 보면서 애써 좋게 평가하자면 직구와 커브의 조화를 노렸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결과는 여지없는 실패다. 몇 년 동안 정민철 투수가 선수생활을 유지하는 데 한 몫을 해 주었던 느린 커브를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커브를 던지기 위한 느린 투구 폼과 직구를 던지기 위한 빠른 투구 폼이 왔다 갔다 하면 제구력 또한 흔들리기 마련이다. 느린 공 위주의 투구패턴시 절대적으로 삼가야 하는 볼넷이 어제 경기에서 결정적일 때 마다 나왔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투구였던 것이다.
해설자 말로는 어제 정민철 투수의 직구 최고구속이 141km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런 느릿한 폼으로도 140km를 찍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직구위주의 피칭이라면 구속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는 과거 주무기였던 커브의 구사비율을 대폭 줄여야 하는 과제와 연관되어 있다. 느린커브 투수에서 빠른 볼 투수로 변신을 시도했다면 그에 걸맞는 변화구도 장착했어야 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고, 커브보다는 체인지업 구사비율을 높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 이글스 팀 내에는 체인지업의 대가가 둘이나 있다. 왼쪽 투수이지만 송진우, 구대성 투수는 체인지업이 좋은 투수다. 이상군 투수코치는 빠른 볼을 던지면서도 제구력이 좋았던 투수출신이다. 정민철이 꼭 느린커브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몇 년 동안 재미를 보다보니 애착이 더 가는 모양인데, 지금 상대해야 하는 타자들은 과거에 상대했던 배팅볼도 잘 못치던 타자들이 아니다.
어제 정민철 투수가 던지는 볼을 보며 이런 말이 많이 오갔다. "저런 비실거리는 공은 내가 배트를 쥐고 휘둘러도 멀리 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