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 유원상 투수의 5회말 투구가 인상적이다. 10 : 2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주자 2루에 두고 스트라이크 하나 없이 볼만 10개를 던진다. 당연히 주자는 만루로 변하고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고 실점하고, 1루땅볼 아웃카운트와 실점을 맞바꾸고,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두 점만을 주고 승리투수 요건인 5회말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볼만 10개를 던지고 나서의 유원상 투수의 몸짓과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결과적으로 삼진을 잡은 위닝 샷(winning shot)이었던 마지막 공을 던질 때의 유원상 투수의 모습이다. 어쩌면 똑같은 투수의 몸짓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참으로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투수가 한 순간에 눈을 뜨는 계기가 있다고는 하는데 포투가 본 유원상 투수의 5회말 투구가 그 계기를 가져오는 순간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유원상 투수는 내내 '얼음왕자' 타입의 투수였다. 마운드에 올라 얼굴 빛이 경직되고 어찌할 줄 모르고 얼어붙어 있었다. 몸이 얼었으니 공이 원하는 지점에 꽂힐리가 만무하고 볼넷이 남발되기 일쑤였다. 그런던 유원상 투수가 언제였나 싶게 이번에는 이상한 버릇을 들고 나왔다. 마운드에서 쓸데없는 동작이 많이 보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마운드에서의 긴장을 풀기위해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야구경기를 보다 보면, 특히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 보면,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에 형식적으로 똑같은 동작을 한 다음에 던지곤 하는 투수가 눈에 띈다. 일본야구에서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무리투수였던 도요타 키요시 투수가 그런 모습을 보였었고, 메이저리그에서는 밀워키 브루어스 마무리투수 트레버 호프만 투수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마무리투수에게서 그런 나름의 의식을 행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유원상 투수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투수가 도요타 키요시와 트레버 호프만 투수였다. 투수가 내성적이어서 마운드에 올라가 긴장이 되면 쓸데없이 시선을 많이 돌리지 않는게 좋다.  눈에 보이는 것이 많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집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원상 투수가 공 던지기 싫어할 때 보면 공 하나 던지고 덕아웃 쳐다보고, 불펜 쳐다보고, 내야 수비수를 쳐다보고 산만하기 이를 데 없다.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술적으로 뭐라할 것 없어 보인다. 기술적으로 투구폼이 어쩌구 저쩌구의 문제라 보이지 않고 마운드에서의 집중력이 문제라 보인다는 것이다.

마침 LG트윈스와의 경기 5회말 수비에서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줬다. 볼만 10개 던지고 나서의 유원상 투수가 마운드에서 시선이 이리저리 촛점없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를 툭 치는 모습과 투 아웃이후 강렬한 시선으로 포수의 사인을 쳐다보는 모습은 어찌 똑같은 사람이 단시간내에 이러한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성적이어서 마운드에 오르면 긴장을 많이 해서 몸이 얼어 붙고, 긴장을 풀기 위해 마운드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산만한 습관을 가지게 됐다면 위에 언급한 도요타 키요시, 트레버 호프만 투수가 행하는 자신만의 의식을 하나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데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투구에 집중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풍기는 이미지가 도요타 키요시, 트레버 호프만, 유원상 투수가 닮아 보인다.

한화이글스에서 만년 유망주 꼬리를 달았던 투수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투수가 조규수 투수로 기억된다. 이제 유원상 투수가 그 전철을 따라가려 한다. 그러고 보니 두 투수의 성격도 많이 닮아 있다. 어쩌면 유원상 투수가 오늘 LG전에서 5회말을 마치며 눈을 뜨게 하는 뭔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포투는 유원상 투수에게서 그런 강렬한 눈빛을 보는 것은 처음이지 싶다.

만일 유원상 투수가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5회말 이닝을 마무리했던 과정을 유심히 봤으면 한다. 참 재미있는 포인트가 발견될 것이다. 순간적으로 왔다 가는 느낌은, 영상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냥 사그러들고 원위치가 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6회말에도 유원상 투수가 좀 더 던졌으면, 그 느낌을 머리와 몸에 각인시킬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유원상 투수를 지켜보는 코칭스태프도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고 본다. 몫이 그 밖에 주어지지 않았단 것이다. 만일 10 : 2 스코어가 아니라 박빙의 점수차였다면 강판되기 충분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SK와이번즈 김광현 투수도 WBC에서 잃었던 자신감을 살려주기 위해 2009년 첫 등판시 자신이 강했던 기아타이거즈 상대로 등판케 해 준 김성근 감독의 배려를 언급했었다. 그 경기를 통해 자신감을 다시 찾았다는 얘기였는데, 유원상 투수도 이번 LG전을 계기로 자신감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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