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지에 대해 좋은 글이 있어서 링크한다.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연관지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엮어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암묵지는 바로 그런 ‘연관의 지식’이기도 하다.
포투는 요사이 암묵지에 바람이 들었다. 책도 사 보고 인터넷에서 관련정보도 읽고 있는데, 위 링크된 한겨레 칼럼이 암묵지에 대해 간결하게,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이란 생각이다.
똑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람들 마다 제각각이다. 사람들 마다 다르게 보는 중에 서로 그럴 수 있다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지만, 자신이 확신을 하는 영역이 서로 겹쳐지면 싸움이 일어난다. 여기서, 같은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달리 해석하는 이유는 사람마다의 암묵지가 달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말할 수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지식인 암묵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형식지 만을 가지고 사안에 대해 해석하고, 이해하면 싸움이 일어날 여지는 별로 없다. 형식지가 심판자 구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근원인 암묵지가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자신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몸에 배어있는 암묵지가 손상을 입었다고 여기면 사람들은 분노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상대해야 할 공격대상이 크면 암묵지가 비슷한 이들끼리 뭉치기도 한다.
암묵지에 의한 의사표현은 감정을 동반하는 예가 많다. 감정의 근원도 암묵지의 한 부분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호기(豪氣)롭게 행동에 나서지만 금방 사그러지곤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조직력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흐트러지기 쉬운 사람의 감정을 주기적으로 복돋아주어야 장시간 투쟁의 기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조직을 이루는 근간이다. 사적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또는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조직에 의해 사람들의 분노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순수한 사람들의 감정을 왜곡시킨다. 집회의 목적이 조직을 이룸으로서 달라지는 것이다.
의사표현의 시작은 자신의 암묵지 손상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암묵지는 뒤로 밀려버린다. 이제 이유는 사실 필요치 않다. 그리고, 분노를 맘껏 분출했으면 감정이 사그러드는 것이 맞다. 감정을 표출했음에도 계속 이 감정을 유지하려 드는 행위는 쾌감(성취, 희생에 대한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표현이 시작하게 한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만일 감정을 표현해서 좌절을 맛 보았다면 앞으로는 나서지 않게 될 것이다. 암묵지로 사람들 저 마다의 안좋은 기억으로 저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는 그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예전 월드컵 축구 대표팀 응원을 위해 길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맛 본 4강 쾌감이 좋은 느낌의 암묵지로 이어져, 오늘의 촛불이 길거리를 장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형식지를 가지고 해결을 구하려 하면 미궁에 빠지는데, 암묵지와 연결시키면 다는 아니라도 좀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암묵지가 재미있다고 하겠다.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연관지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엮어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암묵지는 바로 그런 ‘연관의 지식’이기도 하다.
포투는 요사이 암묵지에 바람이 들었다. 책도 사 보고 인터넷에서 관련정보도 읽고 있는데, 위 링크된 한겨레 칼럼이 암묵지에 대해 간결하게, 알기 쉽게 정리한 글이란 생각이다.
똑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람들 마다 제각각이다. 사람들 마다 다르게 보는 중에 서로 그럴 수 있다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지만, 자신이 확신을 하는 영역이 서로 겹쳐지면 싸움이 일어난다. 여기서, 같은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달리 해석하는 이유는 사람마다의 암묵지가 달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말할 수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지식인 암묵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형식지 만을 가지고 사안에 대해 해석하고, 이해하면 싸움이 일어날 여지는 별로 없다. 형식지가 심판자 구실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저마다 옳다고 생각하는 근원인 암묵지가 서로 부딪치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자신이 느끼지는 못하지만 몸에 배어있는 암묵지가 손상을 입었다고 여기면 사람들은 분노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상대해야 할 공격대상이 크면 암묵지가 비슷한 이들끼리 뭉치기도 한다.
암묵지에 의한 의사표현은 감정을 동반하는 예가 많다. 감정의 근원도 암묵지의 한 부분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호기(豪氣)롭게 행동에 나서지만 금방 사그러지곤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조직력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흐트러지기 쉬운 사람의 감정을 주기적으로 복돋아주어야 장시간 투쟁의 기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조직을 이루는 근간이다. 사적인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또는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조직에 의해 사람들의 분노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순수한 사람들의 감정을 왜곡시킨다. 집회의 목적이 조직을 이룸으로서 달라지는 것이다.
의사표현의 시작은 자신의 암묵지 손상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암묵지는 뒤로 밀려버린다. 이제 이유는 사실 필요치 않다. 그리고, 분노를 맘껏 분출했으면 감정이 사그러드는 것이 맞다. 감정을 표출했음에도 계속 이 감정을 유지하려 드는 행위는 쾌감(성취, 희생에 대한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이는 감정표현이 시작하게 한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만일 감정을 표현해서 좌절을 맛 보았다면 앞으로는 나서지 않게 될 것이다. 암묵지로 사람들 저 마다의 안좋은 기억으로 저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는 그 힘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예전 월드컵 축구 대표팀 응원을 위해 길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맛 본 4강 쾌감이 좋은 느낌의 암묵지로 이어져, 오늘의 촛불이 길거리를 장악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형식지를 가지고 해결을 구하려 하면 미궁에 빠지는데, 암묵지와 연결시키면 다는 아니라도 좀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암묵지가 재미있다고 하겠다.
암묵지.. 저도 포투님의 글을 통해 암묵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항상 많은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가요...^^&
암묵지에 대해 한 번 쯤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