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이 머지 않았다. 독일의 키몬다가 파산신청을 했다 하고, 도시바는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일본내 반도체공장을 닫을 수도 있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프로모스는 대만의 엘피다, 마이크론 주도의 합병 움직임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도 보이고 있다.

메모리기업들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방식의 기본은 생산물량을 감산하지 않는 것이다. 능력이 된다면 기존 생산량보다 더 늘리기도 한다. 이는 수요보다 공급량이 늘어남을 의미한다. 생산한 메모리부품를 치킨게임 참여기업들이 다같이 수요와 관계없이 시장에 내놓으면 메모리 가격은 떨어지고, 팔아도 제조원가 마저 받을 수 없는 가격수준에 이르면 메모리재고가 늘어나게 된다. 재고가 쌓이고 쌓여 감당하지 못할 상황에 이르면 재고를 소진하는 동시에 감산에 들어가거나 공장가동을 멈추게 된다. 그런데,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시기에 몰려 감산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극심한 수요침체기가 치킨게임기 막바지와 겹쳐 버렸다. 메모리 재고가 늘어나는 속도는 배가되었고 이젠 버티고 말고가 아니라 무조건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이제 마지막이 머지 않았다며 겨우 버티던 메모리 기업들이 한순간에 한 방 제대로 된 카운트펀치(counterpunch)를 맞은 격이니 경영계획 특히 자금계획이 헝클어지게 되었다. 또,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은 터라 자금을 융통하기도 쉽지 않다. 만일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극한 수요침체기(2008년 4분기)가 오지 않았다면 치킨게임에서의 버티기는 더 길어졌을 것이다.

메모리 기업에게 돈을 빌려준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메모리 치킨게임은 해당기업이 자금수혈이 되어 버티기에서 살아남기만 한다면 높은 투자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돈을 빌려주면서 6개월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한 분기 만에 빌렸갔던 돈 보다 더한 영업적자를 내 현금을 소진해 버린다면 또 다시 돈을 빌려줄 투자자가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순수한 투자자는 사실 투자한 기업이 직원들을 감원을 하든, 감산을 하든, 공장을 멈추든 관심이 없다. 단지 투자한 원금과 이자 또는 투자이익을 꼬박꼬박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기 마련이다. 이제 순수한 투자자는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망하게 내버려둘 수 없는 후원자(각국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다.

카운트펀치를 맞은 메모리 기업들은 이제 기본적인 수요도 따라주지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어 버티기를 위해 메모리재고를 쌓는 것도 의미가 없고 공장을 멈출 수 밖에 없는데 한 번 멈추면 적어도 3개월은 메모리를 생산할 수 없다. 그렇기에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주력 메모리공장들은 계속해서 가동해야 하고 고정적인 비용은 꾸준하게 발생된다. 그럼에도 공장을 멈춰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에 몰린 것이니 치킨게임의 끝이 다가온다고 보는 것이다.

이제 메모리 기업들은 비이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치킨게임이란 것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할 수 없는 짓인 것이고, 여태껏 치킨게임의 승자는 끝까지 버티는 기업이었는데 이번에는 1등이나 꼴찌나 다같이 그로기(groggy)상태로 빠져버렸다. 전(前)이라면 치킨게임을 주도한 1등기업이 치킨게임종료 사인(sign)을 보낼 때까지 버티는 게임이었으나 지금은 1등기업의 의지도 먹히지 않는 불가항력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비빌언덕이 사라진 셈이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1등기업과 경쟁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일등기업이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탄탄한 성장가도가 보장되기에 버티고 버텨온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만 하자고 사인을 보내고 있는 일등기업에 의해서 치킨게임이 종료되지 않고 외부변수로 인해 일등기업 마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적(敵)이었지만 동시에 믿었던 방패였던 삼성전자의 무력한 상태가 하위기업들에게 상실감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1등기업의 방향타가 사라지니 캄캄한 어둠만이 있는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버티기의 방향이 미래 기업성장을 위한 것에서 당장살기로 전환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또, 치킨게임에 참여했던 해당기업 뿐 아니라 치킨게임에 돈을 대주었던 투자자들은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고 있고, 치킨게임을 관전하고 있던 정부도 미친 치킨게임에서 이제 끝내겠다는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를 휘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돼 버렸다. 독일정부는 돈만 먹는 키몬다를 버리는 쪽을 택했고 대만은 실익이 있어야 살린다는 쪽으로 선 것이다. 기업을 버린다 하나 반도체 팹은 남을 것이니 능력있는 제 주인 다시 찾아주기로 돌아섰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리 사업에 제 3의 경쟁자가 뛰어들 여지도 있다. 대만에서는 TSMC와 UMC가 그들이며 독일에서는 인텔과 ST마이크로의 합작사 뉴모닉스가 될 수 있다.

이제 치킨게임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인데 메모리 가격이 단숨에 급등하면 퇴출과 구고조정이 지연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모양새여서 메모리 가격의 황금 가격대를 설정할 필요가 생겨났다. 즉, 후발업체들에게는 여전히 힘에 겨운 가격이면서 선발업체에게는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가격이 당분간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쨋든 이제, 제 3의 경쟁자가 나서더라도 입맛에 맞는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이고, 대만정부가 나선다고 하나 안전장치를 마련하려고 할 것이기에, 장기호황기로의 진입이 머지 않았다고 하겠다.


  1. 헬보이 2009/01/28 14:12  address  reply

    제 생각에는 하이닉스 주가가 급등한 틈에 자금을 더 쌓아 두어야 될 것 같습니다.

    채권단으로부터 한 번 더 증자를 이끌어 내서 부채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 같네요..

    아니면...일반공모증자방식으로....

    잘 읽었습니다.

  2. 대갈장군 2009/02/01 23:31  address  reply

    결국은 지속적으로 경쟁사 比 앞선 미세 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최후의 승자가 될 거라는 믿음은 유효하지만, 그럼에도 전세계적인 불황에 따른 수요감소가 언제쯤 상승세로 돌아설지가 관건인 듯 싶습니다. 메모리와 CPU의 유통체계가 어떤지 그리고 각각의 supply chain 에서의 재고 수준이 평소와 지금은 어떤지 잘은 모르기에 단언할 순 없지만...
    인텔의 작년 4/4분기 중반부터 지속된 재고감축 및 생산감축을 보면.. 아울러 최소한 상반기까지 예년 대비 절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demand forecasting 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메모리 시장 역시 비록 키몬다 파산에 따른 메모리 가격 상승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상반기까지는 가격 상승이 매우 제한적일지 싶습니다...
    아울러 그러한 올해 상반기 동안, 좀 더 많은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도태되고... 하이닉스는 내실을 기하며 잘 버텨주길... 하이닉스 주주로서 바래봅니다... ^^;;

    그런데... 답글 남기신 헬보이님...
    하이닉스 작년 10월 주가가 2만원대였습니다... 11월 중반이 under 1만원대...
    아울러, 11월 중순과 비슷한 현재의 주가는 자산가치 대비 1.2배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하이닉스 주가가 급등했다는 말씀은 지난주 몇일 동안의 일을 말씀하시는건지요??? 다시 말씀드려 지난주 비록 하이닉스 주가가 많이 오르긴 하였지만, 불과 석달전 대비해서도 주가는 반토막 수준..절대적인 하이닉스의 주가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주식은 미래가치를 포함해야 하는데... 현재 하이닉스의 주가는 거의 미래가치를 제로로 보고 있는 수준이니깐요.. 결론적으로, 급등이란 말은 이러한 큰 맥락을 볼 때 좀 어폐가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ㅎㅎㅎ 노여워 마시길~

    • 포투 2009/02/02 08:16  address  reply   modify / delete

      하이닉스는 이상하게도 딴 짓을 하지 않으면 실적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이 여유가 있을 때 삼성전자를 누를 기회가 있었는데 실족을 하는 바람에 도로 제자리걸음입니다.

      딴 짓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시절이기에 좋아질 것으로 봐도 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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