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치킨게임이 마무리되면서 문득 기세등등하던 엘피다와 도시바에 관한 예전 글을 찾아 다시 읽어 보았다.
도시바 낸드 플래시 투자를 보면서 이제 하이닉스 삼성전자 공조가 필요2008.02.19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삼성전자 따라잡기 드라이브를 보며 도리어 하이닉스가 위기 2008.02.11
엘피다와 헤지안의 합작회사 헤파Hefa를 보며 2008.03.19
D램 치킨게임 승자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아닌 엘피다가 되는 분위기 2008.01.29
엘피다메모리와 파워칩세미컨덕터의 렉스칩일렉트로닉스는 눌러야 2008.01.20
시점을 보니 1년 전 글이다. 비슷한 시기에 엘피다와 도시바가 세계 1위 야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투자규모도 전략적으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전략적'이란 말은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인 경우가 많다.
일본 메모리 기업들이 메모리분야 세계1등을 대한민국에 넘겨준 결정적 이유가 불황기에 제 때 투자하지 않은 것이라면, 다시 1등을 되찾아올 수 있는 기회를 맞았음에도 이번에는 때가 맞지 않은 대규모 투자때문에 발목을 잡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엘피다와 도시바가 전략적인 투자로 이제 반도체 팹을 가동하기 시작했고, 할 즈음인데 신규 반도체 팹으로 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기투자된 시설은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되기 마련이다. 보통 300mm 웨이퍼 10만장 신규 반도체팹 건설에 3조원 가량이 든다고 가정하고, 반도체 팹의 유효기간이 10년이라고 본다면, 일 년에 9,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이 발생해야 제대로 된 투자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면 3조원 현금투자로 이익율이 20% 정도는 뽑아야 사업이라 할 것이니, 이익규모가 6,000억원에 감가상각비 3,000억원을 포함하면 신규팹 하나로 9,000억원에 해당하는 이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손익분기점을 생각해 보면, 엘피다와 도시바가 3조원 모두를 금융권에서 빌리면서, 일본은 제로금리 0.1%인 국가이니 5%의 이자로 빌렸다 가정하고, 원금상환이 거치기간없이 10년동안 나누어 갚기로 했다면 2009년에 은행에 갚아야 할 원금만 연 3,000억원이고 이자는 1,500억원 가량이 된다.
엘피다와 도시바가 300mm 웨이퍼 10만장 캐파 반도체 팹을 건설한 댓가로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 매년 4,500억원이고, 감가상각이 매년 3,000억원에 달하고, 반도체 팹을 가동함으로서 쌓이는 영업적자가 -20%로 영업이익율을 보수적으로 잡아도 6,000억원에 달하니, 투자 한 번 때를 잘못 잡아 집행하는 바람에 1년에 허공으로 날아가는 현금 또는 자산가치 하락분은 대략 1조원이 넘어서게 된다. 3조원을 투자해 1년 만에 1/3의 가치가 날아가는 셈이다.
엘피다와 도시바가 300mm팹을 가동한 원년에 돈을 못 벌게 되면 이자지급이나 영업적자를 충당할 현금이 또 다시 필요하게 되어 차입이 늘어나게 된다. 결국 매년 1조원 정도의 금융권 차입이 되어야 300mm팹 하나를 돌릴 수 있게 된다. 엘피다와 도시바입장에서는 팹 가동 원년에는 3조원을 들인 3조원짜리 반도체팹인 것인데, 1년이 지나면 그 팹의 가치는 4조원으로 늘어나고, 또 1년후면 5조원짜리 반도체 팹으로 변하게 된다. 그동안 감가상각으로 팹의 가치는 떨어져 3조원 짜리가 1년후에는 2조 6,000억원이 되고, 또 1년 후에는 2조 3000억원이 된다. 엘피다와 도시바가 5조원을 들인 반도체 팹의 실제가치는 절반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격경쟁력을 따져 보면 잘못된 투자로 인해, 3조원 팹이었을 때 1Gb DDR2 667MHz D램 가격이 1.2달러가 손익분기점에 다다른다고 본다면, 1년 후에는 30%가 올라간 1.6달러 정도가 되야 적자를 보지 않게 된다. 거꾸로 보면 팹가동 원년부터 이익을 낸 반도체 팹이 있다고하면 해가 갈 수록 가격경쟁력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만일 일본 메모리기업들이 1위를 되찾기 위한 전략적인 팹 건설이 아니고 일상적인 수준의, 현 메모리 점유율 유지를 위한 투자였다면 이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을 것인데 '전략'이라는 미명아래 폼을 실컷 냈기에 그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다.
엘피다와 도시바가 다시 일어서지 못 하도록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방법은 역시 전략적인 신규팹 건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9년 신규팹을 건설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투자여력있는 메모리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해 보이는데, DS, DMC부문으로 나뉘어져 독립채산제를 실시한다고 하니, 호기(好機)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올해 삼성전자가 3조원짜리 신규팹을 건설해 2010년 가동하게 되면 엘피다와 도시바가 4조원을 들인 반도체 팹과 경쟁하게 된다. 아마 그렇게 되면 회사가 쓰러진다며 곡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어쨋든 1년 전에 기세등등(氣勢騰騰)하던 일본 메모리기업(엘피다, 도시바)들은 이제 기를 펼 수 없게 되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엘피다와 도시바를 궁지로 몬 셈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엘피다가 공적자금을 요청한다는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아마 받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삼성이 과연 지금 신규 팹을 건설할 만한 자금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만약에 있다면 그 때부터는 진짜 양측이 물러설 수 없는 데스게임이 벌어지겠군요.
지금 용산에서는 메모리 값이 폭등하고 있는데 이런 사태 하나 벌이진다면 소비자들로서는 대환영이죠!
엘피다가 공적자금을 받는다 함은 경영에 외부개입이 있을 수 있어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에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메모리기업들이 퇴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국내 가전시장을 양분하기에 부풀려진 가전제품을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좀비처럼 정부에 기생하고 있는 대만의 메모리 기업들을 보면 정말 속이 갑갑하더군요.
뭐 막상 이렇게 됬으니 대만의 기업들 뿐만 아니라 엘피다까지 깔끔하게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D램이 명색이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 중 하나인데 좀 시장 점유율을 화끈하게 늘리는 것도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