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의 특허와 기술이 대만이나 중국의 메모리기업들에게 이전되면 그 파급력이 대단할 것이란 글을 전 글에서 쓴 바 있다. 그러면서 2위권 업체들인 도시바, 하이닉스, 마이크론, 엘피다가 자체적인 시설투자를 축소하고 특허와 기술을 활용해 특허경영을 펼친다면 메모리 가격은 볼펜가격 마냥 이익율이 높아질 기미가 보이면 경쟁기업들이 나타나 가격을 낮추게 될 것이어서 일등기업만 살아 남는다고 해서 홀로 승자독식하기 어렵다고 봤다.
여기서 도시바와 샌디스크의 낸드플래시메모리 관련특허의 차이와 엘피다(하이닉스, 마이크론)와 램버스의 D램 관련 특허의 차이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두루 살펴보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샌디스크의 낸드플래시 특허는 원천특허다. 물론 도시바도 원천특허를 가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샌디스크와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관련특허 사용권이 없으면 낸드플래시메모리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샌디스크와 특허 크로스라이선스 계약 및 낸드플래시공급계약을 갱신했으며 도시바와 크로스라이센스 계약을 맺었다. 샌디스크는 낸드플래시메모리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반도체 팹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전략적으로 도시바와 낸드팹을 합작해 설립했으나 작년 말 기업실적이 악화되고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자 도시바에 합작지분을 팔아 자금을 회수하기도 했었다. 샌디스크가 램버스와 다른 점은 램버스는 특허료를 주수익으로 삼는 메모리특허전문기업이라면 샌디스크는 특허료 뿐 만 아니라 낸드메모리카드 제조사업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삼성전자와 샌디스크와의 특허계약에서 낸드플래시공급계약이 따라 붙은 것이다. 낸드공급계약이 병행되면서 특허료를 내리는 효과를 삼성전자가 거뒀을 것으로 볼 수 있는 계약인 것이다. 이는 도시바와의 낸드합작 팹의 지분율 감소만큼의 낸드메모리를 보충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를 삼성전자와 특허권 계약을 갱신하면서 안정적으로 낸드메모리를 확보할 필요로 있어 전 계약에 비해 물량공급이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는 샌디스크의 지분율이 감소해 수급계획에 비해 부족해진 낸드물량을 도시바에게 마진을 덧붙여 구매하는 것 보다는 삼성전자와 특허계약과 연계해 물량계약을 하는 편이 샌디스크에 유리한 계약을 이끌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샌디스크가 특허사용권을 주지 않으면 난처한 처지로 몰리는 약한 기업이기에 상대하기도 편한 것이다. 그럼에도 샌디스크가 낸드메모리 관련 자체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낸드물량이 필요해서 삼성전자를 강하게 몰아세울 수도 없는 처지가 맞물려서 서로 간에 이해를 맞춘 크로스라이센스 계약이 성사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램버스는 D램관련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반도체 팹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을 뿐 더러 D램 관련사업을 벌이고 있지도 않다. 그러하니 D램물량을 확보할 필요도 없어서 특허사용권 계약에 있어 강하게 몰아붙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팹을 보유하고 있지 않음으로서 하나의 핸디캡(handicap)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D램양산기술이 없다는 점에서다. 램버스가 특허 사용권료를 비싸게 받기 위해서는, 다른 특허도 마찬가지지만, 특허사용권을 얻으려 하는 기업들이 많아 경쟁율이 높아야 하는 것이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램버스의 특허만 가지고는 반도체 팹을 만들어 D램을 곧바로 양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램버스 특허를 원하는 기업들은 D램 양산기술을 확보한 메모리 기업들로 한정될 수 밖에 없고, 이는 세계에서 손으로 꼽을 정도 밖에 안된다. 특허를 팔 대상기업들이 한정돼 있으니, 특허 사용권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 없고, 특허를 받아 간 메모리기업들이 램버스기술을 이용해 D램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메모리가격에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특허권 사용료를 높게 책정할 수도 없게 된다. 램버스가 사용권료를 받는 방식은 계약금에 더해 양산한 D램 갯수에 연동되어 사용료를 매기거나, 매출에 연동되어 계약을 맺기에, 메모리기업들과는 공생하는 관계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램버스와 샌디스크의 차이는 원천특허를 보유한 기업이면서 관련 사업을 벌이느냐 아니냐로 구분된다. 도시바는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반도체 팹을 보유하고 있고, 양산기술까지 확보한 기업이다. 그렇기에 램버스 보다 샌디스크가 영향력이 높고 도시바가 샌디스크 보다 영향력이 높은 구조이다. 여기서 영향력이라 함은 특허권 장사를 벌일 때 값어치를 제일 높게 매길 수 있는 기업이 도시바라는 것이다. 도시바와 특허권 계약을 맺으면 원스톱(One-stop)으로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어 낸드플래시메모리를 곧바로 양산할 수 있다. 이는 샌디스크가 단독으로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원천특허라 함은 보통 실험실 수준의 아이디어 특허인 경우가 많다. 직접 반도체 팹을 보유해 원천특허를 기반으로 양산기술특허까지 보유한 도시바가 자체 팹 축소로 사업전략을 바꾸고 특허경영에 힘 쏟을 때 그 파급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전 글에서는 하이닉스, 마이크론, 엘피다까지 도시바의 특허 범주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이들 기업들이 독자적인 양산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이어서 역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들 기업들의 양산기술에 원천특허 사용권을 추가적으로 확보하면 역시 메모리를 양산할 수 있게 된다. 요즘은 어느 기업이 가장 미세한 공정기술을 확보했느냐가 메모리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가 돼 버렸다. 이는 원천기술과의 기울기가 점차 평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등기업이 독보적인 점유율을 확보해서 인텔과 같이 80%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다면 승자독식의 논리에 의해 손익분기점 가격이 1.2달러인 주력메모리 가격을 20달러나 30달러를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인텔과 삼성전자의 차이는 분명하다. 인텔이 만드는 CPU는 다른 기업들이 만들 수 없고, 삼성전자가 만드는 메모리는 다른기업들도 만들 수 있다는 차이인 것이다.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면 메모리 가격결정권을 행사해 대박을 낼 수 있다는 기대로 쉼없이 물량경쟁을 해 왔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등기업이나 꼴찌기업들이나 타격을 받는 것은 거의 비슷해져 갔다. 이미 하이닉스는 두 번에 걸친 유상증자로 유동성 위기를 벗어났으며, 대만메모리기업들은 TMC를 필두로 회생의 실마리를 찾고 있으며, 엘피다는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려고 한다. 이제 쓰러질 수 없는 기업들만 남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잘 읽었습니다.
메모리 삼국지를 보는 듯 합니다.^^
정말.. 멀고도 험하군요^^
그렇습니다. 원웨이는 없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