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메모리기업들이 더 힘들어졌다. 안그래도 D램을 팔면 팔 수록 적자가 쌓이는 판에, 대만정부까지 나서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어 그렇다. 예전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반강제적으로 인위적인 합병을 했을 때 빅딜을 부르짖었던 한국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정책선회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대만 메모리기업들의 기대를 한껏 높여 놓고는 슬그머니 한 발을 빼는 대만공무원들을 보면, 대책없이 세게 나가 남 좋은 일 시켰던 한국의 공무원들이나 그들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랄까. 국가의 녹을 먹기만 하면 똑똑하다던 사람들이 왜 다들 멍청해지는지 알 수 없다. 국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재정집행하면서 막대한 재정규모에 이성을 상실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타이완메모리의 초기구상이 대만언론에 보도됐을 때 과거 실패 예로 엘피다와 하이닉스의 탄생스토리가 나돌았을 게 분명하고 언론의 질타를 받았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있어 성공스토리가 있어도 모자른 판에 실패스토리가 아른거린다면 공무원 입장에서 부실메모리기업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책임을 모두 질머지겠다는 공무원이 나서지 않은 바에야 서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 대만정부가 제 정신으로 돌아왔으나 공무원들이 그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아 놓은 "대만메모리기업들은 모두 경쟁력이 없다."란 말을 수습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수습은 대만공무원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6개 메모리기업들(파워칩, 난야, 프로모스, 렉스칩, 이노테라, 윈본드)이 개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타이완메모리의 회장은 존 슈안 UMC 명예부회장이니, UMC가 대만메모리기업들 중에서 한, 두 개를 가져가고, TSMC가 몇 개 가져가면 될 것도 같다. 어쩌면 대만공무원들이 이런 이합집산(離合集散)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랬으니까 UMC의 명예부회장을 타이완메모리 회장으로 삼았다고 하면 공무원들의 이해못할 행보의 실마리가 풀린다. 나중에 나타날지도 모를 결과론으로 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제 대만정부는 물러서서 낙오하는 메모리기업들의 공장을 인수하는 데 촛점을 맞춘다면 이들 대만 메모리기업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대만공무원들의 변덕이 심해 상황이 어떻게 또 변할지 알 수 없지만, 대만의 메모리기업들이 대만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면, 민간기업들 입장에서는 앉아서 망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기업이 망해서 수중에 한 푼 떨어지지 않을 바에 몇 푼이라도 받고 처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별 대만메모리기업들이 독자적으로 금융권에서 자금수혈을 받으려해도 이미 창구는 막힌 상황이라고 본다면, 기댈 곳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엘피다, 렉스칩, 파워칩은 합병해서 덩치를 키운다고 해도 나을 것이 없다. 지금도 합병만 안했을 뿐이고 하나의 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니 이나저나라는 것이다.
엘피다가 대만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려는 명분은 대만의 망해가는 메모리산업의 회생을 위해 엘피다가 일정부분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마이크론도 마찬가지다. 대만정부가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굳이 대만산 혹을 떠안고 가야하는 메리트가 반감한다. 어차피 대만메모리기업들은 기술력이 없는 기업들이다. 엘피다와 마이크론이 손을 떼면 언제라도 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스스로 자처하고 있는 기업들인 것이다. 대만정부가 비우호적으로 나온다면 엘피다와 마이크론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가지치기에 들어갈 수도 있다. 만일 이와 비슷한 압력이 대만공무원들에게 가해진다면 대만메모리 구조조정은 또 다른 판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미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대만정부에 공을 적잖이 들여왔다. 어찌보면 대만정부로부터의 자금수혈은 우선순위 상 가장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타이완메모리에 D램기술을 팔고 푼돈만을 받아가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나온다면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대만정부에 등을 돌려도 좋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대만메모리기업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도 나쁠 것 없으며, 자금수혈이 꼭 대만정부일 필요도 없다. 자국정부가 대만정부보다는 더 쉽게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이라 판단한다면 대만정부의 갈지자행보는 두고두고 자충수로 남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래저래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만정부의 실족으로 말미암아 D램 시장지배구도는 더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었다. 대만정부가 타이완메모리로 6개사를 합병하는 것은 복잡해서 안되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대만정부가 무슨 다른 짓을 벌이려 해도 더 복잡한 상황이 돼 버렸다. 모름지기 한 번 뱉은 말은 책임졌어야 했다.
타이완메모리로 6개기업들을 통합한다고 했다가 이제는 타이완메모리는 엘피다나 마이크론으로부터 기술을 확보하고 공장을 인수한다고 한다. 그러나, 타이완메모리의 행보가 또 바뀔 수 있다고 본다면 대만메모리기업들을 비롯해 엘피다와 마이크론은 빠져나가기 어려운 진흙탕에 빠진 셈이다. 타이완메모리가 6개월 후에 회사를 설립하고 내년 하반기에 D램을 생산한다고 계획을 잡고 있다고 하는데, 만일 차질없이 대만정부의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대만메모리 기업들은 껍데기만 남은 상태일 것이다. 18개월이면 대만메모리 기업들이 모두 망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며 오히려 남는다. 대만정부의 타이완메모리 구상이 또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또 바뀌고 또 바뀌면, 시간이 더 걸리게 되고, 그러면 결과는 또 마찬가지다.
차라리 타이완메모리가 기술을 확보하고 D램을 생산하려 들지 말고 D램유통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도소매기업으로 만들어서, 대만메모리기업들이 만들어내는 D램을 무작정 구입해 판매대행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메모리기업들은 재고로 남는 메모리를 타이완메모리에 먼저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돈이 되면 수익을 나누고, 안되면 같이 위험을 나누는 그런 뒤치닥거리 재고유통사업을 타이완메모리가 해낸다면 시장판도는 또 다른 양상으로 바뀔 수 있다. 대만메모리기업들은 불황기에 보험에 든 셈이니 그렇다. 대규모 공적자금투입이 곤혹스러운 것은 어떤 정부라도 마찬가지다. 메모리시황이 순환한다고 봤을 때 어려울 때 메모리 재고를 쌓아두는 보험사 같은 마무리회사가 존재한다면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만메모리산업의 회생을 위해 어차피 돈을 들여야 하고, 대만메모리기업들에게 자금을 수혈해 줘 봐야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회수가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망하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돈을 빌려주면 허공으로 날라간다고 보면 돈으로 D램을 사다가 대만국민들 PC 업그레이드하라고 뿌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겠는가 싶다. 움추려 든 소비를 장려한다고 자동차를 사면 세금을 감면해주거나 보조를 해주는 판에, 어떤 나라는 가전제품을 사면 정부가 돈을 일부 보태준다는 얘기도 있다. 대만정부가 D램을 사다가 대만국민들 PC업그레이드 하라고 나눠준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 욕은 커녕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지도 모른다. 이로 말미암아 대만국민들의 PC가 업그레이드 된다면 대만IT경쟁력에 보탬이 될 것이다. 못할 일이 아닌 것이다. 대만국민들은 D램 불황기가 기다려질 수도 있다. PC업그레이드 시기일테니 그렇다.
이제 대만에서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별별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반전 아이디어가 나올 지 지켜볼 밖에 없다.
쭉 읽어보고 있다가 갑자기 든 생각인데
결국은 '기술 없는 자'의 비극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체기술 하나없이 남의 기술을 도입해다가 생산만 했으니
엘피다나 마이크론에게 휘둘리다가(?)이꼴난것 아닐까요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변변한 기술 하나없이 기술을 몽땅 도입해오다가 망한
옛 대우차나 삼성차를 보는듯도 합니다
대만은 파운드리산업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세계 최고입니다.
쉽게 패턴데이터 만을 받아 양산해 주는 서비스로 세계최고를 일궈낸 나라가 대만입니다. 파운드리 서비스가 경쟁이 심해지니까 대만 내 틈새시장이 생겼다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메모리 파운드리입니다.
정통 파운드리서비스보다는 메모리 파운드리가 사업하기 더 쉽습니다. 정통은 해당 디바이스를 모두 알 필요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팹에서 IC를 찍어내는 기술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메모리파운드리는 디바이스가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미세공정별로 디바이스가 다르게 분류된다지만 어쨋든 D램이란 디바이스는 하나입니다.
대만메모리기업들이 계속해서 D램이란 같은 디바이스를 취급하다보니 기술이 별거 아닙니다.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욕심이 생깁니다. 사실 대만기업들이 메모리 파운드리에 사업기반을 두고 있었다면 D램 재고리스크를 부담하지 않았을 겁니다. 욕심이 생겼기에 자체영업물량을 늘린 것입니다. 자체영업기반이 있어야 차후에 자체 D램기술을 보유했을 때 원활하게 점유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쉽게 보였던 D램이란 디바이스가 진화하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80나노 D램을 만들겠다 싶었는데 60나노로 주력이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는 공급과다로 D램이 폭락해버립니다.
어쨋든 대만기업들입장에서는 욕심낼 만한 사업입니다. 아마 대만내 경쟁이 심하지 않았다면 세계 1위 메모리파운드리업체가 탄생하고 시장을 쥐락펴락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만내 경쟁이 심하다보니 계약조건이 나빠지게 되고 떠안아야 하는 D램물량도 많아지게 됐습니다. 일부 메모리 기업들 중에는 자체적으로 물량을 소화할 필요가 없는 정통 메모리 파운드리 서비스만을 원했을 수도 있었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합니다. 관행이란 것이 생겼을테니 말입니다.
파운드리서비스와 메모리파운드리서비스는 사업이 같습니다. TSMC와 UMC는 당장 지금이라도 메모리를 주문받아 만들어 공급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기술을 보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대만내에서 TSMC와 UMC에 밀려 메모리파운드리 사업을 하려 나섰는데 그들과 뭔가 차별성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겁니다.
대만메모리기업들의 사업방향은 맞았지만 경쟁이 심했고, 그래서 한 발 앞서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런 곤경으로 다가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방향을 잘못짚은듯합니다;
요즘 포투님 덕분에 많은것을 배워가게 되네요..
개인적인 생각이니 가볍게 읽으시고 참고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대만 거대 파운드리 업체가 또하나 탄생하지 않을까요...
현재로는 모릅니다. 사라질런지 또는 생겨날런지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