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RTWO 포투가 사는 세상

일본정부가 TMC(Taiwan Memory Company)에 대만정부 지분 만큼의 투자를 한다고 하고, TMC는 대만정부에 100억대만달러(약3억500만달러)의 공적자금을 요청했다고 하고, TMC는 일본 엘피다메모리(Elpida Memory, Inc) 지분 10%를 인수하는데 163억엔(약 1억6600만달러)을 투자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TMC가 엘피다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은 장내매수가 아니라 3자배정이 될 것이 유력하고 엘피다는 TMC로 부터 들어온 돈을 가지고 TMC에 다시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돈이 돌고 돈다는 얘기다. 그러면 언제쯤이 되야 TMC가 회사다운 회사로 만들어지고 TMC 마크를 찍은 D램은 언제부터 만들어질 것인가를 가늠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현재 TMC는 페이퍼컴퍼니(paper company)다. 대만정부에 100억대만달러의 공적자금을 요청했으니 대만정부가 TMC에 투입할 자금규모가 정해진 다음에야 일본정부도 그에 맞춰 TMC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단 대만정부와 일본정부가 TMC에 투입할 자본금 규모가 정해지고 나면 다음수순은 무엇일까?

뉴스에 보도된, 일본정부가 대만정부가 투입한 만큼의 공적자금을 TMC에 투입한다는 얘기는 TMC 경영지분을 대만정부와 같은 비율로 가져 가겠다는 의미다. 하나의 기업에 양국(대만, 일본)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도 모자라 양국정부가 동일한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탄생하는 셈이다. 그렇게 TMC가 설립되면 양국정부 지분율 만큼 임원들을 배정해야 할 것이고, 또 TMC는 엘피다의 지분을 보유하고 엘피다는 TMC의 일정 지분을 보유해야 할테니, 대만기업 TMC의 입장에서는 주도권을 일본에 넘기지 않으려면 대만산 민간 우호지분을 끌어와야 한다. TMC가 프로모스를 일단 인수한다고 하는데 엘피다의 네임밸류(namevalue)와는 차이가 나는 셈이니 동격이 되기 위해서는 엘피다와 갈등을 겪고 있는 파워칩을 끌어 안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TMC가 대만산 기업이되 일본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左之右之)될 것이기 때문이다.

황금비율로 지분을 나눠 가진 다음에야 비로서 TMC는 D램사업을 벌일 수 있게 된다. 일개 민간기업이 자본금을 유치하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타기업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4, 5개월 쯤은 걸려야 할 것이다. 여기에 대만정부 일개 대주주가 최대주주가 되어 TMC가 설립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 두배 쯤의 시간이 흘러야 자본금을 확정하고 TMC가 돌아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TMC가 하려는 일은 엘피다의 D램기술을 로열티 지불하고 받아다가 양산하겠다는 것이다. 파워칩이 엘피다와 제휴해 렉스칩을 합작해 설립해서 D램을 양산한 방법과 다른 점을 굳이 찾아본다면 민간기업이냐 공기업이야의 차이가 날 뿐이다. 또, 다른 점을 찾는다면 렉스칩과 파워칩에 더해 프로모스와 윈본드를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것이 좀 다른 점이었다.

그런데, 처음 TMC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때는 대만내 D램기업 4개사를 통합한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 후에 TMC는 엘피다에게 강점이 있는 모바일D램 기술에 특화한 소규모 D램제조사가 되겠다는 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은 가장 인수하기 만만한 프로모스 공장을 인수해 D램제조를 시작하겠다고, 이랬다 저랬다 바뀌고 있다. 단숨에 대만 D램 4개사를 통합하지 않고 비교적 끌어안기 만만한 프로모스, 렉스칩 만을 통합해 TMC가 D램사업을 시작한다면 TMC가 D램사업을 하나 민간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사업을 벌이나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아니 대만정부 입장에서는 대만내 D램기업들에게 개별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공무원의 입김이 들어가서 회사가 번창하는 예는 그렇게 많지 않다.

정부의 입김이 통하는 기업이라면 정부정책에 따른 수혜를 특정기업에 몰아줄 수 있는 산업의 기업이라야 한다. 그런데 D램산업에 대해 대만과 일본 정부가 정책변화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TMC와 엘피다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간단히 글로벌 특혜시비가 벌어질 수 있기에 그렇다. 멀리 볼 것 없이 일본정부는 최근까지도 하이닉스를 공적자금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핍박(逼迫)한 바 있었다. 그래서 일본정부가 엘피다에 직접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TMC로 우회해서 엘피다를 돕겠다고 편법을 들고 나왔지만 그것으로 그만이다. 더이상 드러내지 않고 엘피다를 도울 정책수단은 용이치 않음이다. 만일 다른 정책대안이 있었다면 복잡하게 대만정부와 공조해 TMC에 자본금을 대고 또 그 TMC가 엘피다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일본 공적자금이 엘피다로 흘러들어가게 하는 복잡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통합에 대한 판만 벌려놓고 한 발 빼 지켜보기를 하고 있다. 여차하면 마이크론이 엘피다나 TMC 마크를 찍은 D램을 북미에 들여놓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TMC가 D램을 만들어도 시장이 제한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TMC가 마이크론에게도 지분을 떼어주는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다면 TMC 설립실무진의 머리는 쥐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포투가 지금 구구절절(句句節節) 글을 쓰면서도 TMC의 정체를 가늠하기도 힘드니 말 다한 셈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TMC는 단순을 넘어 복잡한 회사가 돼 버렸다. 일본정부가 투기판에 들어오기 전에 마이크론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어야 했는데 같은 크기의 밥그릇을 원할 고래 한 마리를 더 끌어들인 셈이다. 지금 이렇게 판을 키워 놓았으니 마이크론을 달래서 TMC로 합류시키기가 용이치 않게 되었다. 마이크론 입장에서는 지금 TMC에 합류해도 주어질 지분이 성에 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복잡해진 판을 접고 새로운 판을 벌리기도 쉽지 않다. 애들 장난도 이쯤 돼서 판을 깨겠다면 싸움이 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대만정부가 판을 만들고 일본정부를 판으로 끌어들인, 이미 판돈이 수북히 쌓인, 투기판을 깨려해도 명분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판을 깨지 않고 꾸려나가야 할 테인데, 마이크론을 끌어들일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이크론에게 양국정부의 지분만큼을 떼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정부가 투기판에 들어오기 전에는 마이크론에 돌아갈 몫은 대략 1/3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이크론 몫이 적다며 거절한 바 있었다. 그런데, 지금 몫은 더 줄어든 점도 있지만 TMC가 나중에 쉽게 큰 돈을 벌게 해 줄 호구로 보인다는 점이 마이크론의 기대치를 한 껏 높이고 있다. TMC에 참여해서 벌 수 있는 돈과 멀리해서 벌 수 있는 돈의 차이를 생각하고 리스크를 고려한다면 TMC와는 상종않는 것이 마이크론에게 돈벌어주는 봉을 잡는 방법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또, 설령 마이크론이 TMC에 합류하겠다는 방침이 섰다 해도 TMC를 주도하는 대만정부와 일본정부가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TMC의 초기구상대로 대만정부가 공적자금을 TMC에 투입했지만 2선으로 물러서고 민간기업 주도로 TMC가 이끌어져 나간다는 구상에서라면 문제가 덜해졌겠지만 지금의 TMC는 그렇지 않다. 이미 대만과 일본 정부가 TMC를 주도적으로 손을 대려 한다. 엘피다와 일본정부, 파워칩(아직 미확정이라 가정하고)과 대만정부가 들어간 TMC에 마이크론 민간기업 홀로 들어가선 격에 맞지 않을 뿐 더러 찬밥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선택을 마이크론이 한다면 그야말로 "나는 TMC의 봉이로소이다"를 외치는 셈이다. 마이크론이 TMC에 참가하는 격을 맞추려면 미국정부가 나서야 한다. 만일 미국정부도 동참한다면 할 말 없다. 그렇지만 미국정부가 마이크론을 뜯어말릴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마이크론이 TMC에 참여하지 않아야 마이크론을 도울 수 있는 정책수단이 미국정부에게 구비돼 있기 때문이다.

TMC가 이런 식으로 생긴다면 두손 들어 환영할 만하다. 스스로 자멸할 것으로 보이기에 그렇다. 결정타를 때린다면 마이크론과 같이 가는 거다. 공적자금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 민간기업들까지 공조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는 얘기다. 공정경쟁의 룰을 TMC와 엘피다, 파워칩, 렉스칩, 윈본드, 프로모스가 깼다며 마이크론과 공동보조를 맞춘다면 TMC가 생기기 전에 가졌던 그들 기업들의 합산 점유율은 커녕 망하지 않으면 다행인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TMC 설립에 관여했던 양국정부의 공무원들은 된서리를 맞을 공산이 크다.

지금으로서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TMC의 멋진 행보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능사다. 괜히 잘 해나가고 있는 TMC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 TMC가 설립되길 손꼽아 기다리자. 마이크론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