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정부가 TMC의 제휴선으로 엘피다를 선택했다고 한다. 대만정부가 마이크론과 엘피다를 경쟁시키고 언론에 살짝 마이크론에게 기울었다고 흘렸다가 결국에는 엘피다와 손을 잡았다. 핵심은 엘피다의 D램 기술도입이다. 마이크론과의 추가 제휴에는 낸드플래시 기술일테고...
얼핏 협상과정을 보면 엘피다에게 불리하게 전개됐다. 자신감을 가졌어도 좋았을 것을 대만정부의 의도대로 끌려다닌 감이 적지 않다. 그 와중에 일본정부는 가만히 팔짱만 끼고 지켜보고 만 있었다. 실제 엘피다는 무엇을 얻었고 대만정부는 무엇을 얻었을 지 수지타산(收支打算)을 계산해 볼 필요가 생겼다.
일단 엘피다는 자금을 지원받는다. 그 방법은 TMC가 엘피다에 지분투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정부 주도의 TMC가 엘피다와 제휴했다고 해서 아무런 댓가없이 엘피다에게 돈을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돈이 대만의 국민들이 꼬박꼬박 내고 있는 세금이라면 대만공무원 입장에서 반대급부가 확실해야 한다. 지분투자는 10% 내외라고 하는데 이정도는 대만정부가 엘피다 경영에 충분히 간섭할 수 있는 지분이다. 대만 공무원들의 입김이 엘피다의 기업경영에 가해진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엘피다에 당장 조 단위의 현금이 유입되는 것도 아니다. 엘피다에 유입되는 현금이 2,500억원 내외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이정도의 자금은 메모리 불황의 끄트머리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다. 적어도 한 분기 반 정도를 버텨야 한다고 본다면, 엘피다의 영업적자를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7,000억에 필수불가결하게 들어가야 하는 미세공정전환을 위한 설비투자 3,000억원 정도를 더해야 최소한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불황기를 버텨낼 수 있다. 기본적인 경쟁력을 위한 설비투자로는 6,000억원 정도가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이는 하이닉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엘피다 보다는 영업적자 측면에서 나은 점을 감안해도 불황기를 벗어나기까지 한 분기동안 5,000억원 정도는 필요하리란 생각이다. 이는 상반기 자금조달한 재원으로 충분할지 좀 부족할지는 여러변수가 있지만 엘피다보다 사정이 나은 것은 분명하다.
어쨋든 엘피다는 당장 현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대만정부와의 협상에서 저자세로 임했고 헐값으로 지분을 넘겨주는 우를 범한 셈이 됐다. 그리고, 기브 앤 테이크(give&take)라는 게 있어서 엘피다가 TMC에 지분을 투자할 필요성이 큰 데, 이를 뒤로 유보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분투자할 돈은 커녕 엘피다는 생존을 위한 돈이 당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했다. 이는 원숭이에게만 해당하지 않음이다. 바로 전에 쓴 글에서 의견을 말한 바와 같이 조금 만 더 견디면 메모리 호황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여태껏 메모리 치킨게임을 벌였던 것이고 말이다. 마지막까지 버티기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달려왔고 이제 막바지였다. 최고 승자는 삼성전자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기정사실인 것이고, 엘피다는 하이닉스와 2위를 가리는 중이었다. 마이크론이 3위이고, 대만 메모리업체들은 다 뭉쳐도, 키몬다는 사라졌다 치면, 이제 꼴찌인 것이다. 치킨게임의 목표인, 퇴출되어야 할, 낙오된 기업들인 것이다. 그런데, 엘피다가 퇴출돼도 이상하지 않을 대만기업들을 끌어안기에 나선 것이다. 엘피다의 현금사정이 좋았다면 헐 값으로 대만메모리업체들을 싹쓸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엘피다와 마이크론이 노린 것은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대만정부가 끼어들면서 산통이 다 깨진 셈이고 말이다. 그렇다고 한참 뜸들인 일에 이제와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니, 처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금조달을 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조삼모사의 우를 범한 것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는 것은 멀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TMC의 투자가치는 커질 것이고, 엘피다의 기업가치도 커질 것이다. 이미 엘피다의 지분은 헐 값에 넘길 것이고, TMC에 지분투자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은 불문가지다. TMC에 엘피다가 설립초기에 지분투자한다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는 엘피다가 일본의 국부를 대만으로 옮기는 짓이라고 해야 되나 싶다.
엘피다와 경쟁했던 마이크론 경영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직접 대만정부와 협상을 벌인 당사자이니 어떤 조건들이 거론됐는지를 알 것이며 엘피다가 어떤 불리한 조건을 제시했을지를 가장 잘 알 기업이 마이크론이기 때문에 그 반응이 궁금한 것이다.
치킨게임을 벌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엘피다가 먼저 핸들을 돌렸다. 이럴 바에 무슨 치킨게임을 벌인다고 ㄷ**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이닉스가 실족을 했다고 여러차레 글에서 밝혔지만 이번 엘피다의 행보는 실족의 차원을 넘어선다. 제목에서와 같이 스스로 독을 들이킨 셈이다.
이제 엘피다는 볼 것 없이 TMC가 어떤 경쟁력을 갖게 될지가 중요해졌다. 엘피다는 앞으로 약해지면 약해지지 강해질 수 없는 길로 들어섰기 대문이다. 종극에는 메모리 제조사가 아니라 메모리 라이센스 전문기업으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TMC가 초기구상(대만 메모리 6개사 통합)과는 다르게 모바일D램에 집중하고 내년 4분기 쯤 엘피다의 대만 내 팹에서 양산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는 또 바뀔 것이다. TMC가 출범되고 나면 엘피다의 영향권 내에 있는 렉스칩, 파워칩의 팹만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TMC가 기술을 확보하고 나서 대만 내 메모리기업들을 다 아우르겠다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TMC가 설립되고 대만의 젊은이들을 TMC에 입사시켜 엘피다의 기술진으로 부터 메모리기술을 전수받아서 언젠가는 대만의 메모리 기술자립을 꿈꾸고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런데, 엘피다는 세계 1등 메모리기술업체가 아니다. TMC가 엘피다를 따라잡기에 얼마의 세월이 걸릴 지, 시간이 가면 언젠가는 동등해질 지 알 수 없다. 공무원들이 미래국가산업구상이라고 해서 이런 저런 영양가 없는 것을 만들어낸 것을 이미 많이 봐 왔다. 엘피다가 TMC에 정력을 쏟은 보람을 느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것은 엘피다가 치킨게임에서 못 버티고 핸들을 먼저 돌렸다는 점이다. 오히려 대만메모리기업들은 그대로 버티고 있다. 끝까지 버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